일상/일기

250413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

0gineer 2025. 4. 13. 10:42

어디선가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뇌라는 건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생겨난 거라고. 아메바처럼 단순한 생명체도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지만 정해진 틀 밖의 무언가가 생겼을 때, 그걸 감지하고 대처하려면 뇌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요즘 그 말이 자꾸 떠오른다. 지금 나는 그 뇌가 너무 필요한 시기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태. 오랜만인 건지 처음 겪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삶이 너무나 버겁다는 거다.

나는 금융권에서의 경험과 자격증을 뒤로하고 스스로 SW의 길을 택했다. 교육에서 1등을 하고, 입사까지는 탄탄대로를 걷는 것 같아보였지만, 운 좋지 않게도 시스템 소프트웨어 쪽, 그것도 하드웨어와 가까운 팀으로 오게 됐다.
처음엔 석박사들과 일하는 게 부담이었지만, 설렘도 있었다. ‘나도 언젠간 저들처럼 저렇게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하는 기대 말이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석박사들 사이에서 내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다며, 잘 하고 있는 것은 맞는지 재촉하고 조급해하는 부서 분위기 속에서 지치고 말았다.

사실 그렇게 재촉을 당하는 줄도 몰랐을 때부터 나는 올해 안에 아이티와 금융 경력을 모두 살릴 수 있는 곳으로 이직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는 있었다. 그래서 연습삼아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회사에 지원했었고, 운이 좋게 면접까지는 갔지만 결과는 예비합격이었다.

회사 분위기만 아니었다면, 오랜만에 돌아간 분야에서 이 정도라면 선방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면접이 끝나고 돌아온 날, 매니저가 나를 위해 해명을 해야만 했다는 걸 알게 됐다.
‘왜 이 사람은 아직도 자신만의 이름을 건 아웃풋이 나오지 않는지.’에 대해 매니저가 대신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 존재 말이다.

이를 깨달으니 너무나 막막해졌다.

당장 이직을 할 수는 없으니 몇 달 정도는 회사를 다녀야할텐데, 내가 그들이 원하는 수준의 일을 어느 정도 해내려면 야근과 주말 출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이직 준비까지 병행해야 하기에 그럴 시간이 없다. 더불어 그럴 의지조차 꺾여버린 상황이다. 남은 선택지는, 이 상태 그대로 6개월을 버티는 것뿐이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나를 믿고 도와준 사람들의 기대도 저버린 채, 무능하고 무기력한 사람으로 남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며칠 전까지는 그냥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고, 이제는 평일이 오는 게 두렵다. 주말에 잠이 들면 다시 평일이 돌아올까봐, 날 한심하게 바라보는 그 곳에 가야할까봐 잠을 들지 못한다.

그냥 그렇다. 누가 보면 우스운 걱정일 수 있고, 그리 대단한 메세지도 결론도 없다. 그냥 지금 내 상태가 그렇다는 기록이다. 하지만 언젠가 이 기록이, 내가 다시 걸어 나갈 수 있는 작은 실마리가 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언젠가는 이 경험 덕분에 내가 더 성장할 수 있었다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시기가 오기를.